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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차트를 보는 마음에 돌이 날아올 때가 있다. 바로 내가 판 종목이 올랐을 때. 딱 1틱만 견뎠으면, 딱 하루만 기다렸으면, 지금 내 계좌에서 빨갛게 빛나고 있을 종목. 그 종목을 팔고 새로 산 종목은 파랗기라도 하면 마음이 조금 더 아프다. 다음엔 그런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으로 매도한 종목의 차트를 찬찬히 훑어보기도 한다. 


조금만 버틸 걸, 괜히 팔았다?


팔지 않아도 됐을 이유가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성급했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주가가 내렸다면? 그래도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까. 역시 잘한 것 같고, 묘한 쾌감마저 느끼진 않을까. 


팔지 않아도 됐을 이유? 밑꼬리가 있었다. 거래량도 감소했다. 지지선을 이탈하지 않았고, 진입신호도 훼손되지 않았다. 피보나치 되돌림 범위 이내의 눌림이었다. 외국인과 기관이 매수 중이다. 등등.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모두 매도 후 주가가 오른 걸 보고서야 댈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주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든 떨어질 수 있다. 바로 다음날 밑꼬리를 채우며 거래량을 늘릴 수 있고, 그래서 지지선을 이탈하며 진입신호도 훼손하고, 마침내 피보나치 되돌림의 최하단을 넘을 수도 있다. 매수하던 외국인과 기관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공매도만 쌓이기도 한다. 


그 때 안 팔았으면... 다름 아닌, 원칙을 어긴 것. 


팔았는데 올랐다고 원칙을 수정하는 것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만 높인다. 이런 예외를 적용하고 저런 특이사항을 고려하다보면 결코 지킬 수 없는 누더기 원칙이 만들어진다. 프로가 원칙을 간단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원칙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다른 경우의 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원칙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어길 핑계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원칙을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이 바로 의심이다. 그 때 팔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은 주식판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레이딩이 어려운 것은 원칙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트레이딩은 스트레스를 쌓아 손실을 야기하고, 간단한 트레이딩은 원칙을 지킨다는 자기만족을 높여 이익을 부른다. 물론 원칙대로 한다고 당장 수익이 나거나, 손실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칙은 지키면 살고, 어기면 자멸할 뿐이다. 


상승의 시작부터 끝까지 먹는 사람은 없다. 


진입 후 오르면 대개 어느 시점에서는 수익 실현 욕구가 생긴다. 사람 심리는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승이 일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 무리가 수익 실현을 하는 동안 다른 무리가 다음 상승 구간을 노리며 진입하고, 그들은 또 다른 무리에게 다음 상승 구간을 내준다. 그 중 하나라도 먹었으면 된 거다. 


진입 후 본전가 주변을 맴돌다가 상승 직전에 팔았다고 해서 손해를 본 것도 아니다. 물론 보유한 시간을 비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시간에 하락 종목을 보유한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행여 손절선을 살짝 이탈해서 팔았는데 이후 올랐다고 '괜히 손절했다'는 생각이 들면, 또 의심병이 도진 것이다. 지금까지 계좌를 망가뜨린 주범이 바로 그 몹쓸 의심병이다. 매도한 종목이 올랐으면 오른 거고, 나는 또 오르는 종목을 고를 수 있다. 시장에 종목은 많고, 원칙을 지키며 살아 있는 한 기회는 널리고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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