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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을 하다보면 수도 없이 하락 구간을 경험하게 된다. 어림잡자면 1년에 두세 차례 조정장, 4년에 한번 꼴로 하락장, 그리고 어마무시한 10년 주기설 등. 하락 구간에서는 시차의 문제일 뿐, 대부분의 종목이 떨어진다. '잘 버틴다' 내지는 '이런 장에서도 오른다'는 등 순간의 자기만족이 더 큰 손실을 부르는 단초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시장은 하락 구간을 시작하면서 신호를 준다. 다만 그 신호는 대개 무시당한다. 상승에 도취된, 혹은 뒤늦게 상승에 동참해 충분히 먹지 못했다고 욕심을 부리는 매매주체들에 의해. 그렇게 다시금 상승세를 보이는 듯 하지만, 시장은 여지없이 제 갈 길을 간다. 그 와중에 친절하게도 2nd 매도 신호를 주면서. 


신호 무시 + 하지 않았을 진입 = 스스로 키우는 손실


이번 하락 구간에서 나는 그간의 하락 구간 경험을 토대로 매매액 제한에 가장 큰 주안점을 뒀다. 만약 시장 신호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매매액 제한이 아니라, 현금 보유에 주안점을 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 신호를 간과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고, 그걸 인정한 다음부터라도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매매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사실 상승 구간에서는 소소한 실수가 적당히 무마되기도 한다. 상승 구간의 수익을 실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와 달리 하락 구간에서는 소소한 실수가 큰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애초에 조심하는 덕분에 큰 실수는 오히려 잘 없다. 결국 큰 손실은 소소한 실수를 용인하면서 생긴 결과다.  


이번 하락 구간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원칙대로라면 하지 않았을 진입을 기어코 했다는 거다. 손절 후 생긴 현금을 소진하기 위해. 빠른 복구를 위해. 매매를 위해. 


초보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현금 보유다. 손절 후에 현금을 보유해서는 평가액이 절대로 불어나지 않는다. 빨리 복구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종목에 또 진입한다. 그러나! 트레이딩은 손실 복구를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손실 복구를 위한 트레이딩은 결국 매매 자체를 위한 매매에 불과하고, 그건 트레이딩의 목적이 아니다. 


결국 트레이딩의 원칙이 모두 무시된 거나 다름없다. 원칙이 무너졌으니 손실이 커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렇게 생긴 손실을 과연 시장 탓으로 돌리는 게 양심적인가. 


trend-following


수익은 시장이 주고 손실은 내가 만든다. 수익은 하락 구간을 무사히 넘긴 자들이 시장으로부터 받는 보상이다. 하락 구간을 버티고 상승 구간을 따라가는 게 바로 trend-following이다. 추세를 간과하거나 무시하면서, 단지 현금 소진을 위한 매매 그 자체에 빠져 오히려 추세에 맞서면서, 과연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나. 


숱한 하락 구간을 경험할 때마다 잘못된 점이 나온다.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잘못들이다. 성공한 트레이더들이 누누이 경고했던 바로 그 잘못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나가고 있다. 처음부터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한 번에 모든 실수를 고칠 수 있다면... 하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보다 더 초보 수준일 때. 


지금은 그런 엄두를 내지 않는다. 한 번에 하나씩만이라도 고치자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도 가당치 않은 욕심일 수 있다. 실수는 반드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again, again, again.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할 수밖에 없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락 구간은 끝나고, 상승 구간은 또 오고, 하락 구간도 또 온다. 다음 하락 구간에서도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노력을 해서 고칠 수 있는 거라면 진작에 고쳤을 실수들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 대비한 대안을 고민해 보는 건 의미 있는 노력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하락이 즐겁지는 않겠지만. 


하락 구간에서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목표는 손실 줄이기다. 


ETF는 매매하지 않는다. 상품구조에 회의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주된 이유는 기대수익률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올라봐야 얼마나 오른다고'다. 그러나 실수를 피할 대안으로는 고려할 수 있다. 시장의 하락 신호를 무시했던 이유가 '그러면 주식 다 팔아야 하는데... 그러면 현금 보유해야 하는데...'였던 걸 떠올리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대안이다. 


이번 하락 구간 중 내가 보는 코스피 차트는 5/30, 6/14, 6/28 등 하락 신호가 있었다. 차트에 꼬박꼬박 체크 하면서도 꼬박꼬박 무시했던 신호들이다. 코스닥도 똑같이 세번이나 신호를 줬다. 6/19, 7/17, 7/23. 신호가 나올 때마다 보유종목의 손절 신호에 좀 더 엄격하고, 교체 매매를 신중히 자제하고, 그 결과 생긴 현금으로 인버스를 샀더라면. 5/30 종가 진입 가정시 8/13 종가 기준 6.15% 상승. 역시 성에 안차는 상승률이긴 하다. '52거래일간 6.15% 상승이면 1년이면 대략 25% 상승, 금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익률'이라고 과장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의미 없는 가정이다. 


인버스의 유용성은 상승률에 있는 게 아니다. 현금 보유를 하지 못해 이 종목 저 종목 기웃거리는 실수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써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하락 구간에서 '언제 시장 흐름에 동참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대적 강세 종목'이 아닌, '상품 특성상 강세가 나올 수밖에 없는 종목'이라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인버스에 대한 입장이 바뀐 건 아니지만, 현금 보유를 하지 못하니 궁여지책으로 짜낸 대안이다. 


시장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애초에 생각했던 9월. 아직 9월이 되려면 많은 거래일이 남았다. 9월까지 무사히 버티기 위해 세웠던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사이 조금 더 큰 폭의 하락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다음 하락 구간에서 이번에 피하지 못했던 실수를 복기하며, 딱 하나만 더 고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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