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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단상

깡통 계좌의 수순

헌책방IC 2018. 9. 5. 12:54

주식 실패담을 들어보면 '그럴 만 했다' 심지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실패담이야 말로 주식시장에서 살아남는 가장 직접적인 본보기가 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깡통을 차는 과정도 참 험난하다. '저렇게까지 해야 깡통을 차는 구나' 싶을 정도다. 


깡통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주식시장에서 프로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깡통도 아무나 찰 수 있는 건 아니다. 돈을 잃을 가능성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지만, 돈을 잃는 것과 깡통 계좌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돈을 잃으면 결국 깡통을 차는 게 아니냐는 말은 숨이 차도록 운동을 하면 결국 죽는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누가 이 말에 맞장구를 치겠나. 


돈을 아무리 잃어도 단 몇 푼이라도 남아 있으면 숨을 돌리고 다시 뛸 기회는 충분히 있다. 천원짜리 한 주도 매매할 수 없게 된 게 아니라면, 깡통을 찬 게 아니다. 남은 돈이라고 건지려고 주식을 포기한 건 포기를 한 거지 깡통을 찬 게 아니다. 계좌가 멀쩡히 살아 있고, 포기할 게 아니라면 깡통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깡통을 두려워해서 깡통을 찬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제시 리버모어는 "공포는 트레이더의 적"이라고 했고, 피터 린치는 "주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트레이더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데, 특히 그것은 한번 생기면 쉽게 삶의 중심을 차지해 버린다. 머지않아 트레이더의 눈을 멀게 하고, 몸을 얼어붙게 만들어 평정심을 잃게 하는 주범이 된다. 


결국 트레이더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두려움에 매몰되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망각한다. 바로 이것이 깡통 계좌가 실현되는 수순이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근데 하필이면 꼭 상황이 안 좋을 때 그런 대비를 하는 게 문제다. 잘 나갈 때 더 조심하며 곤경에 대비하라는 말은 괜히 있지 않다. 그 말은, 상황이 어려울 때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대비'를 한다면 대체 뭘 대비한단 말인가. 깡통을 찬 이후에 먹고 살 대비를 하는 거라면, 차라리 깡통을 차기 전에 시장을 떠나는 게 한 푼이라도 건지는 길이다. 딴에는 대비를 한다는 게 결국 두려움만 증폭시키거나 마지막 한 방을 노린 몰빵이라면 그 대비는 안 하니만 못하다.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는 말은 왠지 끝을 기다리는 것 같아 쓰기 싫다. 끝나면 끝나는 거다. 어느 책 제목처럼 목숨을 걸고 트레이딩을 하다가 결국 깡통 차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내놓는 것과 별반 차이 없다. 그리고 정말로 죽을 생각이라면, 어차피 죽을 거 뭘 두려워하나. 깡통? 까짓 게 대수가 아니다. 


깡통보다 더 두려운 건 아쉬움. 


그 끝이 언제든, 적어도 그 전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해봐야 한다. 그간의 매매를 복기해보면, 과연 나는 제대로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내가 생각한 때가 아닌데도 진입해서 내가 생각한 때가 아닌 데에서 팔았다면, 나는 트레이딩을 제대로 한 게 아니다. 


깡통 찰 때 차더라도, 내가 하려던 트레이딩을 제대로 해보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 아쉬움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고 싶은 트레이딩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잘 모르겠으면, 트레이딩을 쉬고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하면 된다. 트레이더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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